극단적 효율의 시대
바야흐로 대한민국 전반에 ‘효율 열풍’이 불어닥친 것 같습니다.
당연하게도 영상업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좋은 구성’, ‘좋은 영상’, ‘좋은 음향’ 그리고 ‘좋은 그래픽’에 들인 노력은
조회수와 비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회사들은 투자를 줄이고 ‘최소장비’, ‘최소인력’, ‘최소비용’.
즉, ‘효율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극단적 효율의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에이터,
특히 저와 같은 영상콘텐츠업에 종사하는 제작자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Pre - Production
2023년 ‘할리우드 작가 조합’은 무기한 파업을 선언했습니다.
그중 사상 최초로 등장한 파업 이유가 한 가지 있었습니다.
바로 OpenAI의 Chat 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의 등장입니다.
영화와 방송 제작자들이 Chat GPT로 초고를 작성한 후
작가들에게 대본의 수정을 요구했다는 이유였습니다.
2025년이 된 지금.
한국에서 생성형 AI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구성작가는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이 뛰어난 도구를 활용해 직접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PD들도 부쩍 늘었죠.
마치 1+1 마케팅 하듯이
피디와 구성작가간의 ‘효율적인 역할 통합’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완벽하게 보완되진 않지만, 이러한 효율성이 시장을 압도해버리는 것이죠.
Production
촬영에도 엄청난 ‘효율 혁명’이 불어닥쳤습니다.
장비들의 성능이 급격하게 향상된 것이죠.
예전에는 Canon의 5D mark3 정도도 ‘혁명’이라고 했었는데요.
지금은 더 적은 예산으로도 훨씬 뛰어난 카메라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명은 더욱 놀랍습니다.
최신의 0.08kw LED는 과거의 2kw 텅스텐보다 더 밝은 빛을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열은 적게, 크기는 작게, 무게는 가볍게 그리고 가격은 저렴하게.
무엇보다 아무리 많이 꼽아도 차단기가 내려가지 않습니다.
발전차도 이제는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동시녹음 장비의 발전도 눈부십니다.
32bit Floating Point 녹음을 지원하면서
더이상 누군가가 녹음 레벨을 집중하여 지켜볼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이제는 PD 한 명이 장비 웨건 두 개만 가지고 와서
카메라 펼치고 아이패드로 멀티캠 모니터링을 하면서
귀에 이어폰 꼽고, GPT가 다듬어준 대본을 보며
콘텐츠 한두 편을 ‘효율적으로’ 제작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Post - Production
후반작업도 눈에 띄게 변화했습니다.
예전에 6,000만원 짜리 데스크탑으로 하던 작업이
요즘은 1,100만원 짜리 M4 Max 애플노트북 한 대로 가능해졌습니다.
매체가 지상파 TV가 아니다보니
컷백, 모션팩토리 같은 외장 플러그인의 프리셋으로도
충분한 퀄리티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CG실이나 믹싱실을 따로 찾을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모든 작업이 PD의 노트북 한 대로 해결됩니다.
Post야 말로 효율성의 정점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죠.
통합, 타협, 만족
장비와 인력은 통합되었고,
퀄리티는 적정선에서 타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청자는 이 정도 수준에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개인화되고 신속한 콘텐츠의 가치가 더 주목받게 된 것이죠.
물론 노동집약적인 고퀄리티의 콘텐츠들도 여전히 있습니다.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고요.
하지만 Pre - Production 파트에서 언급했듯이,
할리우드와 같은 하이엔드 제작팀에도 효율의 바람은 불었습니다.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웹툰 원작, 리메이크 작품이 대거 제작되었고,
때문에 예전처럼 참신한 원작을 접할 기회는 다소 줄었죠.
밀려오는 Z세대 감독들
지금 우리 시대는
<엔드게임>같은 대작을 만들 필요가 없고,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트래픽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통합, 타협, 만족에 최적화된 감독들 또한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후기 Z세대인 밀레니엄 초반 출생의 감독들은
미취학 시절부터 스마트폰을 접한
소셜 미디어-네이티브 세대입니다.
기성세대 선배들이 수련해온 기술과 경험은
아직 부족하지만, 새로운 도구와 기술을 자유롭게 다루며
도파민 자체를 다루는 능력치를 타고난 세대인 것이지요.
밀려나는 M세대 감독들
등대처럼 버텨주던 선배들은 이제 양극화되어
전설이 되거나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불혹 언저리의 감독 대부분은
레전드가 되기는 좀 힘들고, 요즘 대세 콘텐츠의 감도는 공부해야 비로소 따라갈수 있는,
’낀 세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낀 세대도’ 역시 선배들처럼
’레전드’나 ‘구식’이 되어가겠죠.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간 공들여 쌓아온 기술과 경험을 조금 내려놓고
통합, 타협, 만족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이는 건 어떨지 자문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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